한파에 아파트 세탁기를 쓰면 아랫집으로 물이 역류하는 이유

한파에 세탁기를 쓰지 말라는 방송은 우리 집 세탁기를 걱정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얼어붙은 배수관에 막힌 세탁 물이 저층 베란다로 넘치기 때문입니다. 물이 올라온 집은 누가 세탁기를 돌렸는지 찾기보다 관리사무소에 어디가 얼었는지부터 확인해 달라고 하세요. 언 자리에 따라 배상 상대가 달라집니다.

세탁 물이 저층 베란다로 올라오는 길

베란다 세탁기의 물은 바닥 배수구로 들어가 여러 층이 함께 쓰는 세로 배관을 타고 내려갑니다. 이 배관의 아래쪽이 얼면 물이 내려가지 못하고, 위층에서 내려온 물이 가장 낮은 배수구로 나옵니다. 그래서 1층 바깥으로 드러난 배수관이 얼면 1·2층으로 물이 역류합니다. 난방이 안 되는 베란다의 배관에 보온이 안 돼 있으면 중간층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세탁 물이 세로 배관 끝까지 내려가지만, 아래쪽이 얼면 물이 차올라 1·2층 배수구로 넘치고 위층은 막힌 줄 모른다

곤란한 점은 위층 집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배수가 잘되니 막힌 줄 모르고, 피해는 저층 집에만 생깁니다. 2023년 1월 한파 때 인천의 한 아파트는 매일 방송해도 세탁기를 쓰는 집이 있어 역류가 반복됐습니다. 그때마다 스팀 해빙기로 배관을 녹였습니다. 이 단지 관리사무소 과장은 중·고층 주민이 세탁기를 쓰면 누구인지 찾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한파 때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볼 것

  • 관리사무소 방송과 공지: 세탁기 사용을 멈춰 달라는 안내가 나왔다면 풀릴 때까지 따르세요. 우리 집이 고층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 결빙 방지 모드: 삼성전자서비스는 이 모드가 16시간 동안 급수와 배수를 반복한다고 설명하며 “하수구가 얼 수 있는 환경에서는 결빙방지 기능을 사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안내합니다. 세탁기를 지키려고 켜 둔 모드가 얼어 가는 배관에 밤새 물을 보낼 수 있으니, 베란다 세탁기라면 켜기 전에 관리사무소 안내부터 확인하세요.
  • 배수 호스: 굽은 곳이 있으면 곧게 펴서 물이 고이지 않게 하세요. 호스 끝은 물에 잠기지 않아야 합니다.
  • 세탁기 안의 물: 빈 세탁기로 5분쯤 탈수를 돌려 남은 물을 빼 두세요. 삼성전자서비스는 실외 온도가 영하 5도 아래로 사흘 이어질 때 이런 조치를 하라고 안내합니다.

물이 안 빠지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나온다면 다른 문제입니다. 집 안 수도 전체가 끊겼다면 계량기가 얼었는지부터 보세요.

베란다로 물이 올라온 집이 할 일

세탁기와 샤워를 멈추고, 물이 올라오는 배수구와 젖은 곳을 동영상으로 찍으세요. 그다음 경비실이나 당직 번호로 전화해 이렇게 말하세요.

○동 ○○호입니다. 베란다 배수구로 세탁 물이 올라옵니다. 우리 집은 세탁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같은 라인에 세탁기 사용을 멈춰 달라고 방송해 주시고, 어디가 얼었는지 확인되면 알려 주세요.

언 곳을 물어봐야 나중에 배상을 따질 수 있습니다. 관리사무소가 배관을 녹이고 나면 어디가 얼었는지 나중에 확인하기 어려워지니, 작업이 끝날 때 날짜와 위치를 받아 적어 두세요. 물이 빠진 뒤에는 화장실 배수구가 역류했을 때처럼 치우고 사진을 남기세요.

언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배상 상대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제70조를 보면 전유부분은 입주자가, 공용부분은 관리주체가 관리합니다. 이 글의 조항 번호는 서울시 준칙 기준이니 우리 단지 관리규약에서 같은 내용을 확인하세요.

언 곳해빙·수리피해가 난 집이 청구할 곳
여러 세대가 쓰는 세로 배관, 1층 바깥 배관관리사무소입주자대표회의 쪽. 단지 보험 접수를 물어보세요
한 세대의 배수구에서 세로 배관까지 잇는 배관그 세대그 세대(준칙 제25조 제2항)
얼지 않았고 세탁기 호스가 빠지거나 물이 넘침그 세대그 세대(민법 제750조)

공용 배관 쪽이 원인이면 피해 세대가 청구하기에 유리합니다. 집합건물법 제6조에 따라 건물의 설치나 보존에 흠이 있어 손해가 나면 그 흠은 공용부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공용 배관의 유지·보수는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에 따라 관리주체가 하는 일입니다. 다만 한파로 얼었다는 사정이 배상을 줄이는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판결 원문을 찾지 못해 여기서 단정하지 않습니다. 세대 쪽이 원인일 때는 천장 누수 때의 배상 기준을 참고하세요.

방송을 듣고도 세탁기를 쓴 위층에 청구할 수 있는지도 많이 묻습니다. 준칙 제25조 제1항은 고의나 과실로 다른 세대를 훼손하면 물어 주도록 정합니다. 그러나 청구하려면 어느 집 물이 내 집으로 왔는지 보여 줘야 하는데, 세로 배관에는 여러 집의 물이 섞입니다. 방송 뒤 세탁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배상을 명한 판결은 찾지 못했습니다.

매년 같은 자리가 언다면 한 집만 조심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공용 배관 보온 공사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건의하세요. 각 세대가 배관에 휴대용 열선을 감는 건 화재 위험이 있으니 하지 마세요.

이 글이 도움이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