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나 월세로 사는 아파트의 보일러가 고장 났다면 수리비는 대개 집주인이 냅니다. 대법원은 세입자가 큰돈 들이지 않고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고장만 세입자 몫으로 봅니다. 계약서에 ‘수리는 세입자 부담’이라고 적혀 있어도 범위를 정해 두지 않았다면 보일러 교체 같은 큰 수리는 여전히 집주인 몫입니다.
‘손쉽게 고칠 수 있는 고장’인지가 기준
이 기준은 대법원 1994년 판결(94다34692)에 나옵니다. 고장이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면 집주인에게 고칠 의무가 없고, 고치지 않으면 계약한 목적대로 집을 쓸 수 없을 정도라면 집주인이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2012년 판결(2010다89876)에서도 같은 기준을 그대로 썼습니다. 민법 제623조에 따라 집주인은 계약 기간 내내 세입자가 집을 쓸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겨울에 난방과 온수가 끊기면 아파트에서 지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일러 본체나 배관이 고장 나면 대부분 집주인이 고칩니다. 세입자가 부담하는 것은 직접 손볼 수 있는 간단한 일과 세입자가 잘못 다뤄 생긴 고장입니다.
| 상황 | 대개 누구 몫 | 이유 |
|---|---|---|
| 점화가 안 되거나 온수가 안 나오는 부품 고장 | 집주인 | 고치지 않으면 난방·온수를 쓸 수 없음 |
| 오래된 보일러 교체 | 집주인 | 판결이 큰 수선으로 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
| 난방 배관·분배기 누수 | 집주인 | 세입자가 손쉽게 고칠 수 없음 |
| 온도조절기 건전지 교체 | 세입자 | 별 비용 없이 바로 할 수 있음 |
| 세입자가 잘못 다뤄 망가진 경우 | 세입자 | 집을 돌려줄 때까지 잘 보존할 의무(민법 제374조) |
한겨울에 보일러 전원을 뽑고 오래 집을 비웠다가 배관이 얼어 터졌다면 세입자가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말을 듣기 쉽습니다. 반대로 십 년 넘게 쓴 보일러가 그냥 멈췄다면 세입자 잘못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수리는 임차인 부담’이 있다면
“모든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 같은 특약을 넣는 집주인도 있습니다. 집주인의 수리 의무를 특약으로 세입자에게 넘길 수는 있지만, 대법원은 같은 94다34692 판결에서 그 범위를 제한했습니다. 특약에 수선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다면 세입자가 떠안는 것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의 수선”뿐입니다. “대파손의 수리, 건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같은 큰 수선은 그 특약이 있어도 집주인이 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반대로 “보일러 수리비는 한 번에 ○만 원까지 임차인이 낸다”처럼 범위와 금액을 적은 특약이라면 그 특약대로 부담합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기 전에 계약서 특약란에 ‘수리’나 ‘수선’이라는 말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집주인이 미루면 먼저 고쳐도 될까
먼저 집주인에게 알리세요. 민법 제634조에 따라 세입자는 집에 수리가 필요하면 지체 없이 집주인에게 알려야 합니다. 알릴 때는 아래 내용도 함께 보내세요.
- 보일러 화면에 뜬 에러 코드와 고장 난 모습을 찍은 사진·영상
- 언제부터 난방이나 온수가 안 되는지
- 제조사 서비스센터 기사가 알려 준 고장 원인과 견적
알렸는데도 집주인이 미루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세입자가 먼저 고치고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민법 제626조 제1항에 따라 집을 보존하는 데 쓴 비용(필요비)은 집주인에게 돌려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의 가치를 높인 비용(유익비)은 계약이 끝날 때 정산하지만, 필요비에는 그런 조건이 없어 고친 직후에 청구해도 됩니다. 견적을 받으면 집주인에게 수리비를 먼저 알리고, 출장비·진단비까지 영수증을 모두 남기세요.
청구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이사를 나간 뒤에 청구한다면 민법 제654조·제617조에 따라 집주인이 집을 돌려받은 날부터 6개월 안에 해야 합니다. 나갈 때 집주인이 오히려 보일러 수리비를 보증금에서 빼겠다고 하면, 그 고장이 세입자 탓인지부터 원상복구 범위와 같은 기준으로 따져 보세요. 말로 풀리지 않으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유지·수선 의무를 둘러싼 분쟁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4조에 따른 조정 대상입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할 때와 아닐 때
개별 가스보일러는 우리 집만 쓰는 설비라 관리사무소가 고쳐 주는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세대 안 설비를 어디까지 세대가 고치는지는 단지 관리규약에 따라 다르니, 헷갈리면 관리사무소에 규약 조항을 물어보세요. 지역난방이나 중앙난방 단지라면 집에 보일러가 없습니다. 방이 차가운 원인이 분배기 문제인지 단지 공급 문제인지부터 확인하세요. 난방을 켜도 방이 차가울 때 확인할 순서대로 보면 됩니다.
보일러나 난방 배관에서 샌 물이 아랫집 천장까지 번졌다면 이야기가 커집니다. 아랫집에 물어 줄 돈은 수리비와 별개로 누수 원인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니, 새는 자리 사진부터 남기세요.
보일러가 멈췄다면 수리 기사를 부르기 전에 집주인에게 사진과 에러 코드를 문자로 보내 두세요. 그 문자는 민법 제634조에 따른 통지 기록이 되고, 나중에 수리비를 돌려받을 때도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